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앤 불린 (문단 편집) === 앤은 왜 처형되어야만 했는가? === [[헨리 8세]]가 앤 불린에게 죄를 씌워 처형하기로 결심을 한 데에는 전임인 [[아라곤의 카탈리나]]가 절대로 이혼을 해 주지 않고 버텨서 애를 먹었던 경험이 있었다. 아라곤의 캐서린은 순종적인 아내였기 때문에 헨리 8세는 비교적 쉽게 이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헨리 8세의 예상과는 달리 엄청 고집스럽게 이혼을 거부했다. 그것은 딸 [[메리 1세]]의 미래 때문이었다. [[가톨릭]]에서는 이혼을 허락하지 않으므로 교회 법원으로부터 혼인 무효 판정을 받아 결혼을 해소해야 하는데, 혼인 무효가 성립하면 딸 메리는 헨리 8세의 유일한 적통 공주에서 혼외관계에서 태어난 [[사생아]]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면 메리는 왕위계승권도 잃게 되고, 결혼할 때에도 공주 시절보다 한두 단계 아래의 신랑감을 알아봐야 한다. 그러니 캐서린은 어머니 입장에서 딸의 미래를 위해 결사적으로 이혼 요구를 거절한 것이다. 앤 불린 역시 이혼당할 당시의 캐서린과 마찬가지로 [[엘리자베스 1세]]라는 딸이 있는 상황이었고, 만일 이혼하게 된다면 딸 엘리자베스의 지위가 위태로워지니 극렬 반대를 하고 나올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헨리 8세의 입장에선 순종적인 현모양처였던 캐서린 왕비도 그토록 고집스럽게 버텼는데, 강한 성격의 앤이라면 얼마나 일을 피곤하게 만들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을 것이다.[* 반면 자녀가 없는 [[클레페의 앤]]은 이혼한다고 해도 잃을 것이 많지 않으니 순순히 헨리 8세의 이혼 요구를 받아들였고, 덕분에 이혼 후 오히려 헨리 8세와 사이가 훨씬 좋아져서 왕의 여동생 지위를 받고 지냈다. 헨리 8세도 수월하게 이혼을 해줘서 국제적인 분쟁이나 망신을 주지 않은 앤에게 감사의 표시로 큰 위자료를 주었다.] 게다가 그 난리를 쳐 가며 이혼을 해서 맞아들인 새 왕비와 또 몇 년 지나지 않아 이혼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웃기게도 헨리 8세는 몇년 안 가 그 짓거리를 또 한다. 바로 네 번째 왕비 [[클레페의 앤]]인데 앤도 캐서린과 비슷하게 엄연히 일국의 왕과 정략결혼이 가능한 통치가문의 공녀였지만, 당시 헨리 8세와의 자녀가 없었기에 캐서린과 달리 혼인을 유지해햐 할 절박한 이유가 없어서 이혼을 순순히 받아들였기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헨리 8세도 또 지리한 부부싸움이 벌어져서 전유럽에 망신 사는건 피하고 싶은지, 앤에게 엄청나게 큰 보상을 제시했고 원하는대로 이혼해주자 약속을 지켰다.] 한편으로 캐서린 왕비는 [[이사벨 1세|카스티야 왕국의 여왕]]과 [[페르난도 2세|아라곤 왕국의 왕]]의 딸로 [[카를 5세|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조카]]까지 있어서, 정치적으로 상당한 지지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냉대할 수는 있어도 죽이거나 쫓아낼 수는 없었다. 캐서린에게 일방적으로 이혼통보를 하고 내쫓았으면서도 정작 손을 대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반면, 막 세력을 얻기 시작한 불린 가문의 딸인 앤은 자신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지켜줄 세력이 없었다. 앤은 헨리 8세의 애정밖에 기댈 곳이 없었고, 애정이 사라진 지금은 간단하게 처리해 버릴 수 있는 존재였다. 씻을 수 없는 패륜인 [[근친상간]]이라는 충격적인 죄를 굳이 뒤집어 씌운 것도 앤을 절대 살려두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다. 앤과 소위 "간통을 저지른" 남자들의 체포와 조사, 재판 진행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은 사람은 (한때 불린 가문과 협력했으나 이제는 시모어 가문과 손을 잡은) [[토머스 크롬웰]]이었지만, 결국 '''앤을 몰아내기로 결심하고 그 의지를 관철한 사람은 헨리 8세였다'''. 그는 "앤이 아들을 낳을 수 없으므로, 빨리 다른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고, 가장 손쉽게 앤을 몰아내고 후환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그녀를 죽이는 것이었다. 앤이 정말 [[간통]]을 저질렀다고 보기는 어렵다. '''[[왕비]]의 간통은 반역이었기에''' 반대파가 눈에 불을켜고 있는 상황에서 아들도 못 낳은 처지에 위험을 감수하고 간통을 저질렀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로 앤은 처형이 확정된 상태에서도 끝까지 "나는 절대 왕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신을 걸고 맹세했다. 앤이 불같은 성격의 왕을 유혹한 야심 많은 여성이라 해도, 그 전에 대단히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였음은 분명하기에 누명을 썼다는 설에 더 무게가 실린다.[* 헨리 8세는 정치적으로 필요하다면 아무 죄가 없는 사람이라도 죄를 만들어 처형하는 게 일상이었던 인물이다. 심지어 [[토머스 크롬웰]]조차 그가 "나는 아무런 죄가 없다,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간청했는데도 누명을 씌워 처형했는데, 감히 왕에게 억울하다고 했다는 이유로 일부러 어설픈 초보 집행인을 사형집행인으로 차출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애초에 사람됨이 자기를 거슬리게 하면 되게 쪼잔하게 구는 사람이라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앤의 발목을 결정적으로 잡은 것은 매력적인 그녀가 많은 남자들과 시시덕거린다는 평판이었다. 당시에 여성은 일단 정숙하고 순종적이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분 높은 여성은 궁정연애의 원칙에 따라 아름답고 매력적이'어'야하며, 궁정의 여러 남성과 [[밀당|밀고 당기며]]("flirting") 교류를 하는[* 물론 말로만 이렇게 하는 것으로, 육체관계 등 선 넘지 않는 한도.]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모순적인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왕비]]나 높은 신분의 여성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흔한 관습으로 남성들은 왕비이자 궁정의 안주인인 앤의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그녀에게 매혹되었다는 등의 아부를 했고 앤은 재치있게 그들을 희롱하는 듯한 태도로 응수했다. 이는 기사도의 흔적으로 매우 일반적인 관습이었고 헨리가 앤을 사랑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앤은 이미 유부남인 왕을 사로잡았던 전력이 있었기에 그 매력과 적극성은 금방 "남동생을 포함한 6명의 남자와 잤다"는 추문에 힘을 불어넣는 역효과를 낳고 말았다. 거기다 앤은 완전 못돼먹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착한 것도 아닌 드센 성격, 고고함, 자존심 등으로 세간의 호감을 사지 못했다. 가뜩이나 비호감인데 저런 면이 캐서린 왕비와 더 비교되었고, 특히 캐서린과 메리에 대한 태도는 누가 봐도 악녀 그 자체였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캐서린 모녀를 거슬려 했던 앤은 캐서린이 친정에서 가져온 귀중품이나 양친에게서 받은 물건까지 탈취해 [[엘리자베스 1세|자기 딸]]에게 주려 하거나, 캐서린이 죽자마자 대놓고 기뻐하면서 이제 자신이 영국의 진짜 왕비라고 소리치며 온 궁정에 기쁨을 과시하고 다녔다. 또한 메리에게 가한 구박은 말할 것도 없었으니 원래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해도 결국 예나 지금이나 불륜녀 출신의 계모가 할만한 나쁜 짓은 전부 다 해버렸다. 현실적으로도 유부남의 본처를 몰아내 그 자리를 차지한 여자, 전처 자식을 학대, 그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믿고 설침, 남편의 새 여자를 투기하고 불안해하다 밀려나는 테크를 착실히 밟은 셈. 그 과정에서 왕의 총애와 인심을 잃은 앤은 그렇게 파국을 향하고 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